스스로 생각하고, 생각을 바꿀 용기
1784년 철학자 칸트는 「계몽이란 무엇인가」라는 글에서 계몽의 표어로 '사페레 아우데(Sapere aude)', 곧 "스스로 생각할 용기를 가져라"를 내걸었습니다. 그는 사람들이 스스로 생각하지 못하는 까닭이 지성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용기가 모자라서라고 보았습니다.
스스로 생각한다는 것
스스로 생각한다는 것은 남의 의견을 모두 거부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의 말, 책, 뉴스를 듣되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내 이성으로 한 번 따져 본다는 뜻입니다. 내가 속한 무리가 다 같은 말을 할 때 "정말 그럴까?"라고 묻는 것은 생각보다 큰 용기가 필요한 일입니다.
틀렸다고 말할 용기
스스로 생각할 용기에는 또 다른 얼굴이 있습니다. 내가 틀렸음을 인정하는 용기입니다. 우리는 생각을 바꾸는 것을 지는 것으로 여기곤 합니다. 그래서 새로운 근거가 나와도 원래 입장을 지키려고 애씁니다.
하지만 생각을 바꿀 수 없다면 토론은 의미가 없습니다. 근거를 보고도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다면 우리는 대화를 한 것이 아니라 각자 연설을 한 것입니다. "당신 말을 듣고 보니 내 생각이 틀렸네요"라는 말은 패배의 선언이 아니라, 대화가 제 역할을 했다는 증거입니다.
모른다는 것을 아는 것
소크라테스는 자신이 모른다는 것을 안다는 점에서 남들보다 조금 더 지혜롭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확신이 넘치는 시대일수록 이 겸손이 귀합니다. 모를 수 있다는 것, 틀릴 수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사람만이 배울 수 있습니다.
새로운 정신은 대단한 영웅의 결단이 아니라, 이런 작은 용기들이 모여서 만들어진다고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