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소리가 아니라 근거로
어떤 주장이 옳은지 정할 때 우리는 생각보다 자주 근거가 아닌 다른 것에 기댑니다. 더 큰 목소리, 더 많은 '좋아요', 더 유명한 사람, 혹은 내 편이 한 말이라는 사실. 이런 것들은 판단을 빠르게 해 주지만, 옳은 답으로 데려다주지는 않습니다.
근거를 묻는 습관
이성적으로 생각한다는 것은 거창한 일이 아닙니다. "왜 그렇게 생각해?", "그걸 어떻게 알 수 있지?"라고 한 번 더 묻는 습관입니다. 다른 사람에게만이 아니라 나 자신에게도요. 내가 강하게 믿는 생각일수록 그 근거를 따져 보면, 의외로 어디서 들은 이야기나 그때의 기분에 기대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근거를 묻는 것은 상대를 몰아세우는 일이 아닙니다. 오히려 대화를 사람과 사람의 싸움에서 생각과 생각의 비교로 옮겨 주는 일입니다. 누가 말했는지가 아니라 무엇을 말했는지를 보게 되면, 서로 감정이 상할 일도 줄어듭니다.
사실과 해석을 나누기
많은 다툼은 사실과 해석이 뒤섞여서 생깁니다. "그 정책 때문에 물가가 올랐다"는 말에는 '물가가 올랐다'는 사실과 '그 정책 때문'이라는 해석이 함께 들어 있습니다. 사실은 확인할 수 있고, 해석은 따져 볼 수 있습니다. 둘을 나누어 말하기만 해도 우리가 정확히 어디에서 의견이 갈리는지가 분명해집니다.
판단을 잠시 미루는 힘
이성은 빨리 결론을 내리는 능력이 아니라, 근거가 모일 때까지 결론을 잠시 미루는 힘이기도 합니다. 모든 일에 당장 입장을 정해야 할 것 같은 시대지만, "아직 잘 모르겠다"는 말은 부끄러운 말이 아닙니다. 정직한 말입니다.
NeoEthos가 바라는 사회는 모두가 같은 결론에 이르는 사회가 아닙니다. 서로 다른 결론에 이르더라도 그 결론이 근거 위에 서 있는 사회입니다. 그런 사회에서는 의견이 달라도 대화가 계속될 수 있습니다.